어떠한 현상을 다루는 학문체계의 구성요소와 그것들의 연결고리가 단 한점의 모호함도 없이 완벽히 결합되어있고 증명되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현상에 대한 '옳은' 설명으로 마땅히 받아들여야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어떤 학문이던지 가장 처음에는 증명하지 못하지만 누구에게나 당연하다고 받아들여질 수 있는 명제와 용어에 대해 가정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누구에게나 당연한 가정이란 건 바꿔말하면 아무에게도 설득될 수 없는 명제란 얘기에 다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문 자체의 완결성을 논하기 위한 핵심개념은 바로 이 공리이다.

 흔히들 자연과학의 공리는 귀납적 실험방법에 의해 확립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반은 맞지만 반은 틀린 얘기이다. 과학중에서 수학만 빼고 (그것은 자체논리의 완결성만을 추구하는 유일한 학문이다) 모든 것은 공리는 실제 존재하는 자연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초석이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실험을 하더라도 공리는 맞다고 확정될 수 없으며, 더욱 중요하게는 그러한 공리체계를 대체하기 위한 다른 공리체계를 우리들은 매우 수월하게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동설이 천동설에 비해 관측결과를 더욱 잘 설명해서 선택되었는가? 아니다. 그당시의 천동설은 지동설 못지않게 관측결과를 잘 설명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지동설이 옳은 이론으로 선택되었는가?

 자연현상은 마치 우리가 장부를 정리하듯 깔끔하게 정리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자연현상은 지독하게 복잡하며 그것을 과연 법칙의 틀 안에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게 원리적으로조차 가능할지는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공리를 '현상에 대한 올바른 기술', 혹은 '절대적으로 옳은 사실'로 받아들여서는 아주 곤란하다. 그것들은 우리가 단순히 '학문'을 하기 위해서 우리 머리속에서만 옳다고 '상상'하는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다. 우리는 그러한 가설을 통해 '현상'을 보고 그것을 '해석'한다. 이것이 바로 학문을 하는 방법이다. 실험결과의 해석이 이론에 의존한다는 것은 수없이 많은 사례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보자. 사회과학 또한 과거의 주먹구구식 방법에서 자연과학의 성공에 고무되어 공리에서부터 출발하는 형식주의의 학문하는 방법을 채택하기 시작했다. 그것의 결과들로는 인간은 모두 이기적이며 자신에게 가장 이로운 방향으로 행동한다고 가정하는 미시경제, 유전자 단계에서 가장 이로운 방향으로 생물은 행동을 한다는 이기적 유전자설 등이 있다. 이것들은 모두 훌륭한 결과이며 우리 사회를 해석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이론들의 '가정'이 '틀렸'으며 그것에 대한 수많은 사례를 들며 외우기도 힘든 수많은 변종학문을 제시하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다. 이것은 사회과학에 있어서 공리의 역할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사람들의 주장일 뿐이다. 이론이란 엄밀한 의미에서 '현상'에 대한 정확한 '기술'이 아니라 그것을 파악하기 위한 '해석'의 틀이다. 인간이 어떠한 현상의 본질에 직접 닿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것에 대한 모델을 머리속에 상상할 수 있을 따름이다. 그러한 것을 깨닿지 못하는 사람들은 공리가 옳다/그르다로 매사를 너무 간단히 판단해버리고 공리에 있으면 좋을 것 같은 사실들을 마구 집어넣고 '자명'하다고 주장한다. 결과는? 보통은 그런 공리들로부터 과거 이론들이 했듯 유의미한 결과를 이끌어내는데 모두 실패하고 만다.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다. 이러느니 차라리 과거의 공리를 택하고 좀 더 교묘한 논리를 이용하여 새로운 현상을 설명하게 최대한 노력하는 것이 더욱 건전한 학문적 노력이다.

 사실 문제는 이렇게까지 간단하지만은 아닌게 공리를 '옳은'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기존이론의 신봉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모두 이기적이란 것을 옳은 것으로 믿고 행동했을 경우의 해악은 이루 말로 할 수 없다. 결국 양쪽 모두에게 학문적 정직함, 성실함이 요구되는 시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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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중에 한 명이 최근에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이라는 단체에서 무료봉사를 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공부에

흥미를 잃은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무료로 수업을 제공해주는 것인데 상당히 초기단계고 그 나름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한다. 친구는 나에게도 참여해볼 것을 권유했었는데, 나는 바쁜 것을 이유로 거절하였지만 진정 하고만

싶다면야 바쁜 것이 그렇게 큰 문제가 될 수 있을까... 사실은 그다지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그냥 나 자신을 돌아보자면 그렇게 봉사활동에 각박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귀찮음 반 바쁨 반 정도로 봉사활동을

많이 하지는 못하였지만 그래도 기회가 닿는다면 거절하지 않고 해왔던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을 굳이 거절했던 이유는 내가 가르치는 것에 상당히 흥미를 못느끼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나는 그 이유를 

나의 남을 가르치는 능력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기에 그렇다고 생각해왔었는데 친구 말로는 가르치는 기술이 처음

부터 뛰어난 사람이 어디 있냐며 조금 해보면 금방 늘어난다고 하였다. 이번 학기에 조교를 해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아마도 다시 생각해보건데 나는 내가 이미 상당히 잘 파악하고 있는 개념에 대해 말하는걸 지루해하는 것 같다.

나도 잘 파악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나와 비슷한 수준의 사람과 토론하기를 원한다. 물론, 남에게 어떤 개념을 전달

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 특히나 고등개념의 경우, "어떠한 개념을 언어로써 남에게 정확히 전달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란 철학적인 질문으로까지 번진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알고 남이 모르는 것에 대해 지식의 흐름

을 만든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리고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이란 단체가 표방하듯이 우리 또한 그러한

가르침에 많은 덕을 보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만 들 뿐이다. 아니면, 그냥

나의 지금 공부가 힘들어서 남을 가르친다는, 어찌보면 사치스러운 행위에 관심을 가질 정도로 내가 여유가 없을

뿐일까? 그냥 여러 생각이 든다.


 뭐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소리지만... 나는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에게 양자역학이나 통계역학을 가르쳐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대학생들에게 요구하는 것처럼 어떠한 확률이나 partition function의 정확한 계산

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의 가장 핵심적이고 중요한, 그러면서도 재미있는 개념에 대한 전달에 중점을 두고

강의를 해보고 싶다. 양자역학에 많이 노출되지 않은 학생들에게서 그러한 개념에 대한 순수한 감상도 들어보고

싶고 나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뭐 이게 아주 허무맹랑한 소리만도 아닌게 다른 어떤 것도 아닌 무려

'초끈이론'을 대중화(?)시킨 브라이언 그린의 엘레건트 유니버스란 책이 있지 않은가. 이 책 덕분에 물리학자라면

응당 초끈을 이해해야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말았지만 어찌됐건 최신과학에 대한 엄청난 흥미를 불러일으켰단

점에서 상당히 기념비적인 책이다. 그리고 과거에 영국에서는 유명한 물리학자들이 크리스마스 강연이라는 것을

열어 그때 대중적인 과학 강연을 행하였는데 할때마다 초만원이어서 사람들은 제대로 앉지도 못하고 물리학

강의를 들었다고 한다. 그런 전통을 한국에서는 만들어가지 못하리란 법이 어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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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리를 잘 하기 위해서는 수학을 잘 해야 한다고 흔히들 말한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단순히 물리에서 방정식을 세우고 그것을 푸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기에 수학을 잘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연상에 불과했을 뿐인 이 주제는 물리를 배우면 배울수록 더욱 파악하기 모호해져 간다. 아마도 이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사실에 대한 고찰이 필요할 듯 하다.

 "왜 수학이 물리를 적절히 기술할 수 있는 언어인가?" 사실상 물리를 하는데 수학을 쓰게 된 것은 상당히 최근인 뉴턴 경 이후이다. 그 이전에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이 존재했으며, 그것은 지금 살펴보자면 엉성하기 짝이 없는 이론체계이지만 나름의 신뢰성을 가지고 2000년 이상 생존한 역학체계이다. 또 우리가 당연히 물리의 영역에 포함시키는 열기관, 비행체 등은 가장 초기에는 물리의 이론을 거의 모르는, 흔히 말하는 발명가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다. 때문에 물리에 있어서 수학은 그 자체로써 반드시 필요한 존재는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수학을 물리에 있어서 그렇게 중요하게 만드는가? 그 답은 다음과 같다.

 "물리는 실험과학이다." 물리뿐만 아니라 현대의 모든 자연과학이 마찬가지이다. 모든 과학적 사실들은 실험에 의해 지지되고 반증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어떠한 숫자가 없이는 실험이 이론을 지지한다는 것을 말하기가 매우 어렵다. 과거에, 과학이 동물학 수준에 머물렀을 때 과학자들이 하는 일은 어떤 새의 깃털이 어떤 색깔이고 어떤 곤충이 어떤 식물을 먹는 등의 아주 단편적 사실들의 수집이었다. 이때 어떤 섬에 거북이를 보고는 A는 저 거북이는 크구나, B는 저 거북이는 작구나 하는 두 가지 다른 결론을 내렸을 때 대체 거북이는 큰가, 작은가를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확히 할 수 있는 것은 그 거북이 몇 cm인가를 측정하는 것 뿐이다. 결국 자연과학의 목적이 이론과 현실을 최대한 일치시키는 것이라면, 그 과정상에서 수의 도입은 불가피한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과학은, 종이에다 끄적거린 어떠한 숫자와 어떤 측정기에 읽히는 숫자를 일치시키는 작업이다. 

 미분방정식이 물리를 지배하는 유일한 수학적 도구였을 때는 이 정도의 설명이면 모든 의문이 해결되었을 것이다. 미분방정식이 세상을 기술하는 이유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우리는 스케일이 적으나 크나 성립하는 어떠한 일반적 법칙을 실험을 통해서 찾아내고 그것을 극소의 경우에 대해 쓰고는 이것을 통해 미분을 하거나 적분을 하는 것이다. 미분이나 적분이 수학적으로는 꽤나 추상적 도구가 될 수도 있지만 실제로 물리에 있어서 그것의 본질은 나누고 더하는 것이다. 극한을 취한 뒤 수학쪽에서 나온 어떤 멋진 정리를 쓰더라도 이것이 최종적으로 옳은 결과를 주는 것은 별로 신기하지 않다. (물론 극한을 취하는 것이 정말로 자연을 정확히 기술하는가? 하는 것은 아직도 잘 모른다. 세상은 불연속적이기 때문에 우리가 자연을 정말 제대로 기술하기 위해서는 미분방정식이 아니라 어떤 점화식 형태의 대수방정식을 써야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현대에 등장한, 극도로 추상화된 이론물리이다.

 어떠한 대상과 그것들간의 연산관계를 부여한, 극히 추상적 대상인 군group이 물리를 하는데 필수적 도구가 되었다는 것은 지금 들어도 신비롭다. 하지만 실상을 알고보면 군이 물리에 도입되게 된 이유는 꽤나 간단명료하다. 바로 대칭성이다. 물리학자들은 대칭성을 사랑한다. 복잡한 미분방정식을 풀지 않고도 대칭성을 이용해서 그 시스템에 숨겨진 유용한 정보를 많이 꺼내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대칭성을 기술하기에 가장 적절한 언어가 수학의 군론이다. 물리학에서 대칭이란 어떠한 변환에 대하여 라그랑지안Lagrangian이나 해밀토니안Hamiltonian의 형태가 불변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모든 것들은 군의 생성자generator와 group action으로 표현될 수 있다. 하지만 현대물리학에 오면 그것은 약간 절박한 상황으로 변한다. 바로 대칭성 말고는 우리가 시스템에 대한 정보를 꺼낼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말로 바꿔말하면, 우리가 어떤 시스템의 미분방정식을 풀어낸다는 것은 현대물리학에서 거의 모든 경우 불가능에 가깝다.

 때문에 사람들은 이상한 상상을 시작했다. 어떠한 물리적 시스템의 dynamics를 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졌기 때문에 아예 대칭성을 제1원리로 삼고 그것에 의해 자연이 운행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말로 치부하기에는 대칭성이 자연의 원리를 찾아가는데 아주 강력한 도구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 수 없긴 하지만, 물리학 = 대칭성 찾기 라는 공식이 성립되어 버린지가 오래이다. 사실 대칭성이란 녀석은 아주 인위적이고 (때문에 신비롭지만) 심지어 인본적이다. 대체 잘 운동하던 입자를 갑자기 반입자로, 시간을 거꾸로, 위치를 서로 뒤집는 변환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단 말인가? (이것들이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C, T, P 대칭이다) 이것들의 의미는 바로 와닿지 않을뿐만 아니라 심지어 unphysical한 조작이다. 모두들 신비롭다고 말하면서 어느 정도의 의심은 가지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만약 엄청난 수학적 도구가 개발되어 모든 현상을 다시 미분방정식으로 충분히 기술할 수 있게 된다면 대칭성은 문제를 잘 푸는 기술 정도로 돌아가버릴지도 모른다.

 추가적으로, 초끈이론에 도달해서는 물리와 수학의 관계는 더욱 복잡해져버렸다.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초끈이론에서 가리키고 있는 대상이 엄청나게 고급수학으로 기술되는 대상이란 것이 그 이유이다. 더욱 난감한 것은 초끈이론은 제대로 성립된 과학이론이 아니란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이 끈으로 기술된단 것도 믿기 힘든데 그 사람들이 최신 대수기하학의 용어를 써서 칼라비-야우 공간에 끈의 진동모드를 구겨넣는 것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기술하고 있는 대상이 충분히 물리적이지 않다보니 사람들은 극도로 추상화된 형태로 물리를 하고 있고 누군가는 그들은 수학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물론 수학자들은 그들의 수학을 하고있다고 인정하기 싫어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여담을 하자면 이제까지는 수학이 물리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느냐 를 논했는데 마지막으로 물리가 수학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해 조금만 이야기하겠다. 일단 첫번째로 물리는 제대로 정의되지 않은 수학적 개념들이 산재해있다. 물리학자의 기본철학은 "사고나기 전까진 일단 갈때까지 가보자"이다. 디랙-델타 함수가 그랬고 파인만 적분이 그렇다. 대충 희미한(그렇지만 틀리지는 않은) 논리적 연결고리와 물리적 직관, 그리고 예측과 맞는 실험결과만 있으면 물리는 모든 것이 만족이다. 이러한 것들을 수학적으로 엄밀하게 정의하려는 노력이 현대수학의 거대한 흐름중 하나이다. 두 번째로는 실제로 물리학자들이 수학을 하고 있다. 이것은 특히 초끈이론학자들에게 해당되는 것 같다. 물론 그들의 관심사는 결국 물리이기 때문에 수학자들이라면 당연히 관심을 가질 질문에 대해 무시하기도 하고 조금쯤은 엉성한 논의를 구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초끈이론을 전개해나가는데 있어 필요한 꽤 많은 이론적 단계들은 완벽히 순수하게 수학적 질문이다. 아까 말한 칼라비-야우 공간에 끈을 구겨넣는 것이나 끈의 진동모드를 구분하는 것이 그 대표적 예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이외에도 수학의 Dual theory를 사용하여 끈이론을 다양한 물리계에 적용하는 등 물리 또한 수학을 상당히 강력하고도 폭 넓게 사용 및 발전시키고 있다.
Posted by 天然